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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seas Participants

하 진 Ha Jin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 - 세계화 시대의 문학

살아남기 위한 자들의 언어

하진

오늘날의 정치적 풍토가 세계화의 속도를 늦추고 있는지 모릅니다만, 세계화라는 역사의 과정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서로 다른 나라의 사람과 사람이, 또 문화와 문화가 번영과 발전을 위해 만나고 뒤섞일 수밖에 없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만나게 되면, 때때로 중복 영역이라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창조되게 마련이지요. 사람들이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몇몇 사람들은 그런 공간에서 삶을 살고 또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중복 공간은 유동적이고 불투명한 것일 수 있습니다. 우선 누군가의 좌표와 가치가 더 이상 본래 모습을 지킬 수 없거나 적용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유동적일 수 있습니다. 나아가, 불확실성과 혼란이 커져서 누군가의 태도나 심지어 정체성까지 쉽게 흐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불투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중복 영역은 우리가 의미 있게 존재하고자 할 때 우리 가운데 일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비옥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주제는 문학이기에, 우리는 그와 같은 중복 영역에서 일하고 제 역할을 수행하는 작가와 언어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이 영역에 존재하는 문제점들, 우리가 씨름해야만 하고 각자가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문제들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판단에 의하면, 중복 영역 안에 존재하는 작가들을 대체로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두 문화 또는 그 이상의 문화에 관해 글을 쓰되, 오로지 하나의 언어로, 그들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일차 언어로 이 같은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차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인도 출신의 작가는 대부분 첫째 유형에 속하며, 그들은 그들의 모국에서 공식 언어인 영어와 더불어 성장했기 때문에, 영어는 그들의 일차 언어인 셈이지요.
그리고 부모가 동아시아 출신인 아시아계 미국 작가들 가운데 일부도 그런 유형의 작가들입니다. 창래 리(Chang-Rae Lee), 맥신 홍 킹스턴(Maxine Hong Kingston), 에이미 탄(Amy Tan), 기쉬 젠(Gish Jen), 루스 오제키(Ruth Ozeki) 등이 이 유형에 속하지요. 그들 모두는 영어를 자신들의 창작 언어로 사용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창작에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가 영어입니다. 창작 언어를 습득해야 하는 다른 유형의 작가들은 한층 더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때로 자신들의 환경에 맞지 않는다고 느끼지만 생존을 위해 언어 습득의 노력을 계속해야만 하는 그런 처지에서 투쟁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어지는 논의에서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둘째 유형의 작가들입니다. 이 자리에서 그들이 직면하는 몇몇 기본적 문제들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합니다.

주제에 접근하기 전에 먼저 미국 이민자의 체험이라는 측면에서 피할 수 없는 언어 문제 가운데 몇몇을 예증해 주는 동시에 조명해 줄 수 있는 한 편의 소설 작품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