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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딘 파라 Nuruddin Farah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 - 작가와 시장

나의 인생을 만든 갈등들

누르딘 파라

나는 1945년, 소말리아의 오지, 옛 이탈리아령 소말리랜드의 바이도아 (Baidoa)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 곳은 영국령 이었으며, 이탈리아는 획득한 모든 영역을 제 1차 세계대전의 승자에게 뺏긴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오가덴(Ogaden)에서 자랐고, 그 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오가덴은 에티오피아의 오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개발이 덜된 나라에 있는, 가장 개발이 덜 된 지역이다—에티오피아는 1933년에 무솔리니가 침공하기 전에는 한 번도 식민 지배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에티오피아인들의 주장은 신경 쓰지 말 것.) 나는 살면서 이례적인 일들을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나는 흥미롭긴 했어도 많은 시간 동안 불안을 견뎌야 했던, 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난 내 삶을 다른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겠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태어났던 많은 아기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다섯 살 이후에 살아남을 확률은 단지 30퍼센트뿐이었다. 우리는 모두 비슷하게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 나는 어려움을 헤치고 살아남아서 고령에 이르게 된 것인데, 이것은 희귀한 일이다. 이것은 몇 가지 사항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첫째, 운이 좋았고, 둘째, 나는 황소의 기질을 갖고 있으며 완수해야 할 임무를 가진 사람이 갖기 마련인 강한 정신 상태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내 형제들 중 두 명은 각각 세 살과 다섯 살이 되기도 전에 죽었다. 셋째 형은 스물 일곱 살 때 죽었다. 한 해 동안은 건강했는데 이듬해에 원인도 모르는 채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최근에는 첫째 형이 망명지인 아디스 (Addis)에서 황달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서 죽었다. 나는 내가 살아남은 어떤 이유가 있는지, 나와 내 나라 국민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내가 이루어야 할 목표가, 내가 품어야 할 포부가 있는지 자주 자문해왔다. 좋은 교육 덕택에 나는 이렇듯 충격이 큰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려 애쓰지 않았고, 내가 과연 그 질문을 잘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해 의심을 품어왔다.

아버지는 영국 식민 사무소에서 오가덴의 총독을 위해 저임금을 받으며 통역을 해 주는 일을 하시다가 받은 퇴직금으로 칼라포 (Kallafo)에 잡화상을 여셨다. 아버지의 고객 중 몇몇은 소떼를 모는 유목민들이었다. 이들은 마을로 내려와 소를 팔았고, 그 돈으로 설탕이나 옷, 그리고 다른 생필품을 샀다. 가끔 우리의 넓은 주거지는 사실상 그들의 기지가 되어 버렸으며, 그곳에서 여행자 유목민들은 야영을 하면서 아버지의 잡화점에서 물건들을 사곤 했다. (후략)